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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겨울왕국 2> OST에 대한 아쉬움 - Into the Unknown

by LightBlogger 2020. 3. 31.

대부분의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겨울왕국 시리즈에서도 OST는 작품의 이야기, 주제,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2편의 OST는 어딘가 1편의 그것에 비해 조금 아쉬움이 남는 느낌이다. 나름의 이유를 한번 적어본다.

 

※ 겨울왕국 1편과 2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Into the Unknown>

 

1편의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 과 같은 위치의 OST라고 생각한다. 초반부에서 갈등의 원인을 설명하며 이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 은 훌륭했다. 사랑하지만 동생을 멀리해야 하는 언니와 이유를 모르고 그리워하는 동생이라는 갈등의 기본 설정을 관객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고, 그 든든한 바탕 위에서 부모님의 사망과 언니의 대관식까지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아주 속도감 있게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Into the Unknown> 은 엘사만 듣는 어떤 목소리가 갈등의 원인이 되고, 급기야 엘사가 그 목소리를 따라 나서기로 결심함으로써 마법의 숲의 정령들이 깨어나 모험이 시작된다는 기본 설정을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했다. 하지만 두 가지 면에서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방향성의 문제다. 첫 부분에서 엘사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대해 시종일관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목소리의 부름을 따르기로 결심하는데, 이 정반대의 방향성을 관객들이 납득하기에는 한 곡이라는 시간이 다소 짧지 않았나 싶다.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이나 <let it go> 는 모두 노래가 시작하기 전에 이미 설정된 어떤 상태를, 노래를 진행하며 그 방향을 따라 강화하거나 더 전진시켰다. 한 곡 내에서 캐릭터의 태도를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좀 더 효과적이려면 노래가 시작하기 전에 엘사가 목소리의 부름을 따르는 쪽으로 끌려가는 방향성을 이미 관객들에게 인지시켜 주었어야 했다. 하지만 곡 이전에 목소리에 반응하는 엘사의 반응은 주로 당혹감으로 보인다. Is something coming? 정도로는 약하다. 노래가 시작되고 나서 아무리 '사실 엘사는 옛날부터 고민해 왔어요.' 하고 밝혀봐도 그 옛날부터라는 단어가 관객들이 마음으로 납득할 실제 시간의 길이가 되어 주지는 않는다.

 

두 번째는 그래서 이야기의 핵심이 잘 전달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노래를 통해 진행시키려는 이야기의 핵심은, 나중에 엘사가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하듯이 "I woke the magical spirits." 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노래의 마지막은 "How do I follow you?" 이다. 여기에도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목소리를 따라가는 것과 마법의 숲의 정령들을 깨우는 일 간의 상관관계가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관객들은 다소 어리둥절한 상태다.

 

둘째, 엘사가 목소리를 따라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은 정말 맞는가? 반쯤 농담을 섞자면, 엘사 입장에서는 "아니, 어떻게 하면 따라갈 수 있는지 물어봤지 내가 언제 따라간다고 그랬어." 하고 억울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동작 또한 목소리를 잡으려다 끝내 닿지 못하고 멈추어 선 모양새가 아니던가. 종합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정보가 [엘사가 목소리를 따라가기로 했다] -> [그 결과 마법의 숲의 정령들이 깨어났다] 이기에는 둘 다 어딘가 의문이 남는다. 그래서 관객들은 노래 자체에 명확한 임팩트를 받기 보다 다소 어리둥절한 상태로 추가 설명을 기다리는 상태가 된다.

 

추가 설명은 깔끔한가? 마법의 숲이 깨어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어린 엘사는 혹시 그 숲이 깨어날 가능성이 있느냐 걱정하며 아버지에게 묻는다. 그러니 엘사가 일부러 그 숲을 깨운 것은 아닐 터다. 가장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엘사가 그 목소리를 따라가기로 결심하고 보니, 그게 (왜 그런지 잘은 모르겠지만) 마법의 숲의 정령들을 깨우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려면 엘사가 자신의 선택의 결과로 정령들이 깨어났음을 깨닫는 순간 당혹스러워하거나 두려워했어야 자연스럽다. 하지만 정령들의 상징이 들어 있는 얼음 결정을 어루만지는 장면에서도, "The air rages. No fire. No water. The earth is next." 하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엘사는 그런 식의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노래 이후의 장면들은 의도치않게 관객을 자꾸 낚는(misdirect) 역할을 해 관객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든다.

 

 

* into the unknown이 끝나고 얼음 결정이 떠오름

 

관객: (오, 엘사가 만든 건가? 저걸 왜 만들었지?)

 

엘사: Air. Fire. Water. Earth... (어루만짐)

 

관객: (엘사가 의도적으로 만든 게 아니었어...? 갑자기 정령의 상징은 왜 나왔지?)

 

엘사: The air rages. No fire. No water. The earth is next. We have to get out.

 

관객: (정령들이 화가 났구나. 엘사가 뭘 잘못했나?)

 

엘사: I woke the magical spirits at the Enchanted Forest.

 

관객: (아, 엘사가 깨운 거였어? 알면서 일부러 깨운 건가?)

 

 

무엇보다 이런 이야기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것은 정서 때문이다. <let it go> 의 '모르겠고 다 꺼져버려' 라는 식의 해방감은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기에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관객들은 그간 자신을 숨기려는 엘사의 필사적인 노력을 보아왔고, 자신이 의도치 않게 모든 일이 엉망이 되어 버린 것도 보았다. 엘사는 최선을 다했고, 결과는 그녀의 탓이 아니다. 이제 관객은 엘사를 응원할 준비가 되었다. '그래, 장갑따위 벗어버려. 다 꺼지라고 해!'

 

<into the unknown> 역시 감정의 흐름은 비슷하다. 애써 안된다고 자신을 억눌러 왔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모르겠고 결국 저 미지의 세계로 목소리를 따라 가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관객은 <let it go> 와는 달리 마냥 엘사를 응원하기가 쉽지 않다. <let it go> 는 이미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저질러진 일을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지만 <into the unknown> 은 오롯이 자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각주:1] 그리고 그 선택은 엘사 자신이 잘 알고 있듯이 한 국가의 여왕으로서는 다소 무책임한 종류의 것이다. 그 선택의 결과 실제로 백성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기도 했고.

 

설득력을 만들 수는 있다. into the unknown을 부르는 엘사의 속내는 사실 외로움일 것이다. 이 세상에 이런 존재는 나 하나인 것 같다는 깊은 외로움. 그 외로움이 결국 '이 목소리의 주인이 어쩌면 나 같은 존재는 아닐까?' 하는 전혀 증명되지 않은 가능성에 베팅하도록 하는 동기가 되는 것이다. 그 외로움이 결국 These days are precious 도, Everyone I've ever loved is here within these walls 도 다 뒤로할 만큼 강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노래가 전달하는 정서가 지금과는 달라야 한다. 관객들이 '엘사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런 선택을 했을까.' 하고 연민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어야 했다. Where are you going, Don't leave me alone! 같은 대사는 꽤 절박해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이 대사를 할 때 엘사의 표정은 꽃밭에서 도망가는 나비를 잡으려는 소녀 같다. 안되는 걸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어쩔 수 없이 나만을 위한 선택을 하는 사람 같은 고뇌나 죄책감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 전달되는 이야기와 전달되는 정서가 예상한 것과 다르니 관객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내가 생각한 그게 아닌가? 내가 지금 잘 이해를 못 하고 있는 건가?' 하고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어쩌면 애초에, 두려운 미지의 세계를 가능성의 세계로 합리화하게 되는 것을 메인으로 잡아서는 안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제목이 Into the Unknown 이어서는 안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쓰다 보니 한 포스트에서 다루기에는 다소 긴 내용이 되었다. 다음 OST는 다음 포스팅에서.

 

 

 


 

 

 

 

  1. 혹시 앞에서 지적한 인과의 모호함이 여기서 엘사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함은 설마 아니기를 바란다. 즉 엘사는 어쩔 수 없이 목소리의 부름에 조금 반응해 주었을 뿐인데 그걸 목소리가 설레발을 쳤고, 정령들을 깨웠다. 그러니 엘사의 탓은 아니다, 는 식으로. 설마 그런 의도였다면 대실패라고 말해주고 싶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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